📢공지📢

2023년 3월부터는 마따마따가 유료 뉴스레터(월 1,900원)로 전환되면서 발행 일정이 모두 변경됐어요. 매월 4주간 금요일마다 저녁 9시에 발행돼요. 5주가 있는 달 다섯번 째 주는 쉬어가고요! 😊

# 우와수집함, 투덜댈 수 있지!

일이 끝나고, 저녁을 먹기 위해 “힘쎈드위치(저번 글 주제)”에 가는 중에 회사 친구 ‘바다’를 만났다. 서로 어딜 가는지 물었다. 바다는 운동을 하러 휘트니스 센터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밥을 먹으러 간다고 하니 바다는 자기도 나를 따라 샌드위치 가게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직장에서 힘쎈드위치까지는 걸어서 20분 걸리는 거리인데! 이 더운 날씨에? 나는 속으로 걱정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꼬알라 파이와 제주당 맞은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바다에게 물었다.

“거기 걸어서 20분 걸리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너, 그러면 힘들다고 짜증 내면 안 된다?”

“응응!”

“거기 진짜 먼데……. 중간에 못 가겠다고 투덜대면 안 된다?”

그 말을 듣다가 바다가 되물었다.

“왜 투덜대면 안 돼? 투덜댈 수 있지! 나 힘들면 투덜댈 거야!”

아, 그러네. 투덜댈 수 있지! 투덜대도 걸을 수야 있는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걱정되었던 걸까? 먼저, 일단 나부터 다른 이들에게 투덜대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상대방이 기운 빠질 것 같았고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더 나아가 주위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가까운 이들이 투덜대면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했다. 그러고는 ‘하하..!’ 라고 어색하게 웃거나 방향성 없는 사과를 전했다. 애초에 투덜거리는 상황이 없도록 상황을 미리 정리하기도 했다.

지금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짜증이 난 바다에게 미안해하고, 쩔쩔매면서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하는 나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평소 같았다면, 바다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나는 샌드위치 가게를 가는 것을 포기하고 가까운 가게로 가자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다의 “투덜댈 수 있지!”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행동은 오로지 바다가 선택한 것이고 그 행동의 결과를 책임지는 것도 바다의 몫이었다. 내가 해야 할 몫은 그저 내가 선택한 목적지를 묵묵히 가는 것 뿐이었다. 내가 미안해 할 필요도, 달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

바다는 걷는 중에 장난스러운 짜증-원래 30분 걸리는데 너 20분이라고 거짓말했지. 저 횡단보도도 건너야 된다고? 야!!!!!-을 냈다. 그러다가도 의식의 흐름대로 골목 사이사이에 있는 가게들을 보며 “다음 번에는 저 샐러드집 가보자” 등의 이야기, “만약 ~라면 어떻게 할 거야?”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희파람아, 만약 내가 여기 맨홀에 빠지면 어떻게 할 거야?”

“아니, 바다야. 당연히~”

“당연히~?”

“그쪽은 위험하니까 무조건 피해서 가야지.”

“야!!!!!!!!!”

무사히 가게에 도착해서 바다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투덜거려도 괜찮구나. 상대방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인정해줄 여유가 없던 내 마음을 보며 조금 부끄러웠고, 이번을 계기로 투덜이라는 감정을 보듬어 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의 방이 넓어진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래, 좀 투덜대면 어때? 

언제, 어디서, 무엇에 대해 장난스레 투덜거릴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투정을 부려 본 적 없이 눈을 살짝 내리깐 채로 ‘음,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왜 투덜거리는 게 안 되냐고 묻는 바다의 질문이 나에겐 낯설다. 그렇지만 힘든 상황이 나에게 찾아올 때, 조금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 바다처럼 장난스럽게 짜증도 내고 투정도 부려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툴툴대는 나 자신에게 씨익 웃어주고 싶다.

# 우리동네_제제젤라또, 글라시에 홍

최근에 외이도염 때문에 회사 점심시간마다 귀를 소독하기 위해 이비인후과 병원 갔다. 내가 다니는 이비인후과는 12시 반부터 점심시간이기에 12시가 되면 바로 이비인후과로 달려가야 했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간 후,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오면 꼭 들리는 곳이 있었다. 바로 글라시에 홍이라는 곳이다.

좋아하는 젤라또는 와인무화과호두크림치즈이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 해주려고 할 때마다 숨이 차다. 그렇지만 이렇게 긴 이름만큼 맛도 오래오래 혀에 남는다. 이름에 담겨있는 음식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정말.

맛있다.

먹을 때마다 늘 놀라운 맛이다. 부드러운 우유를 꽉꽉 뭉쳐놓은 듯한 크림치즈 사이에 들어간 무화과가 달달하게 느껴지고, 호두는 아작아작하고식감에 고소한 맛을 더해주었다. 나는 와인무화과호두크림치즈를 고정으로 하고, 떡흑임자와 자두 소르베, 메론 셔벗, 다크 초콜릿, 밤단호박을 마음이 가는대로 날마다 다르게 주문해서 먹곤 했다. 와인무화과호두크림치즈를 제외하면 밤호박이 제일 맛있었다. 호박 맛이 나는데 시원한 단호박! 단호박 특유의 비릿함은 없어지고 담백함과 고소함과 달달함만 남겨진 단호박 맛이다.

다른 맛들도 맛보는 즐거움이 엄청나다. 무슨 맛일까 상상해보면서 한입 턱 먹어보고, 그 맛을 느껴보는 사이에 입 안에서 사르르 없어진 젤라또를 다시 한 번 더 느껴보기 위해 한 입 먹어보고. 물론 맛 중에는 내 취향이 아닌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맛마저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마치 알 수 없는 물건이 담긴 선물상자를 뜯어보는 즐거움과 비슷했다. 달마다 바뀌는 젤라또 리스트를 알아보기 위해 매 달 첫날마다 글라시에홍 블로그를 구경하는 게 쏠쏠한 기쁨이다.

젤라또를 먹을 때마다 안드레아 데 카를로의 <불완전한 경이로움> 책이 떠올랐다.

“진정한 즐거움은 새로운 시도와 실패할 수도 있는 위험, 그리고 상상도 못 할 가능성이다. 당연히 실수도 하고, 잘될 것 같아도 오히려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앞서 적었던 친구, 바다와 이야기하다가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

“바다 너는 맑은 물 같아. 네 마음이 투명하게 전해지니까.”

바다는 그 말을 듣더니 활짝 웃었다. 만일 내가 바다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더라면 과연 물처럼 투명한 마음을 이렇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새로운 경험들과 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작은 과정들이 경이로운 즐거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우유맛, 할머니입맛(흑임자, 콩가루처럼 구수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제제젤라또를 추천한다. 글라시에홍이 원물의 맛을 최대한 살린다면 제제젤라또는 원물의 맛을 좀 더 부드럽게 가공한 듯한 맛이다. 나는 다른 곳에는 없는 쑥젤라또가 무척 맛있게 느껴졌다. 최근에는 바질토마토젤라또가 나와 무척 맛있게 먹었다.